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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의 경험과 생각에 관하여
작성자 박여리 날짜 2019-12-29 01:35:00 조회수 38

안녕하세요 함께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조합원 여러분!

저는 당사자 조합원 박여리입니다. ^^


저는 지난 8월 말, 여자공동생활가정 '담쟁이'에서 독립하여 좌충우돌 혼자만의 생활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정신보건계에서 일하시는 다양한 분들을 만나 직접 당사자의 이야기도 들려드리고, 연구에 참여도 하며, 글을 쓰거나, 저와는 다른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공동생활시절 꿈꿔왔던 것들을 하나씩 이루는 소소한 재미도 있습니다. ^^


한편으로는, 공동체 안에서 나 자신의 회복만을 위해 애쓰던 시야에서 시설과, 공동체를 나와도 나 자신이 안전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몇가지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1. <당사자 연구에 관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QyhMZtb0Or8



<당사자연구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 스스로 자신의 문제나 고통을 동료들에게 드러내고 그 패턴과 구조를 분석하여 당사자들과 공동으로 그 해결책을 모색해 가는 연구 과정>


오늘 저는 <한일당사자연구교류>에 참여하고 돌아왔습니다. 2월에 있을 첫 교류의 사전모임이었는데요. 베델의 집으로 유명하신 무카이야치 선생님과도 영상으로 직접 연결되어 대화할 수 있어 무척이나 재미있었습니다. 한일 첫 당사자 연구 교류에 참여하게 되어 굉장히 기쁘더군요. 정신질환에 관련된 이야기나 모두가 공동으로 정한 주제에 관해서도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실, 당사자 연구 참여는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카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당사자연구 종강수업에 참여하여 직접 사회복지사분들의 연구에 참여 했습니다. 그때 받은 좋은 인상으로 '함께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으로 낮병동 친구들을 모았고, 29일 드디어 처음으로 모임을 갖습니다. 실제  타 기관에서 쓰이고 있는 자료들도 직접 전달받게 되어 기대가 됩니다.


언젠가 함께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란 이름으로 성남과 베델의 집이 라인이나 스카이프 계정으로 당사자 연구를 직접 연결할 날도 오지 않을까요? 그때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교류할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를 해 봅니다.


2. <공동체 외부의 사람들에 관하여>


저는 담쟁이 거주 시절 성당에 다녔습니다. 할머니의 권유로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그런 저를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수녀님의 도움으로 교리공부부터 시작해 점점 성당사람들과 친해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저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마음이 힘들어졌습니다. 사람들에게 내가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개인적인 것들을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제 주소를 물어 구역을 정해야 했기에 어디사는지 무척 궁금해했고, 어디에 산다고 하면 누구와 사는지 물어왔습니다. 당시 저는 마음이 아픈 분들과 함께 살아요 라고 솔직하게 운을 떼었습니다. 원장님과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개인적인것은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런것들을 이야기 하지 않으면 성당이라는 공동체안에 소속될 수 없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깊어질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처음엔 마음이 힘들어서 약을 먹는다고 말씀드렸고, 그 다음엔 공동생활하는 가정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병원의 위치나 식당, 카페 등등에 대해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뒤 , 수녀님이나 성당분들께서 제게 남은 떡이나 빵 등을 챙겨 주셨고 다른 사람보다 마음을 더 써주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길가다가 성당어르신이나 수녀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제가 성당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함께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이 지역내의 공동체로서 지역과의 직접적인 교류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동체가 훌륭하더라도 지역주민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없다면 뿌리깊은 나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해서, 저는 성남시청의 마을공동체 정책과에 여러가지 제안을 해보았지만, 정신장애인과 지역주민과의 교류과정에서 지역주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신장애인을 여전히 위험의 대상으로 보는 무지이며, 정신장애인이 타인의 안전을 보장할 의무도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조차 정신장애인을 실제로 만난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며 더이상의 진행을 할 수 없었습니다. 


조합원 여러분!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에게도 이익이 가며, 당사자 조합원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에 대해 지혜를 모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3. <정신질환의 증상에 관하여>


'친구는 영혼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증상'이야 말로 영혼의 거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살아온 과정과 그 과정을 구성한 환경을 공감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 저 사람! 도대체 왜저래?" 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했고, 그 안에서 반드시 습득해야 하는 것이 '사회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창하게 '증상'을 결박하고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화로움(和) 속에 개개인(私) 어울릴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의 길입니다. 


  처음부터 길이었던 곳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한 발자국을 내고, 뒷사람이 또 그 자국을 따라 걷고 걸었더니, 여러사람이 연결될 수 있는 길이 된것은 아닐까요? 공동체 내에서 증상을 가진 서로에게 한발자국씩 마음의 길을 내어 진정한 소통의 길이 많아진다면 경미한 환우는 그런대로 회복의 시간을 줄일 수 있으며 사회와의 소통의 길을 내는대에도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만성화된 환우의 경우에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으며 자기 나름의 길을 닦아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4. <정신질환의 국가책임제는 가능한가?>


저는 가끔 고영원장님을 놀리곤 합니다. 일명 '빚' 공격인데요. 원장님이 아프셔서 마스크를 쓰고 계시거나 목소리가 좋지 않으면 죽으면 안된다면서 꼭 돈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지역의 정신질환자를 위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일개 동네 의사가 해야 할 일인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국가와 지역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지역사회돌봄이라는 이름으로 돌봄노동을 더욱더 열악한 환경으로 밀어넣고 있는것은 아닐까 우려됩니다.

언제부턴가 저는 원장님의 빚이 개인의 빚이 아니라 이 사회가 일개 의사에게 진 큰 빚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치매와 발달장애 역시 정신질환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돌봄을 당연시 해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국가에게 책임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당사자와 가족은 국가의 한 시민으로서 사회적 존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는 없겠지요. 오랜 준비기관과 과도기를 거쳐 안정적인 제도의 정착까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비용과 시간이 들것입니다. 저는 한국이 이탈리아의 과거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타 국가보다 더 안전하게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며 구체적으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수혜가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정책의 변화와 사회의 비관적 인식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이뤄내기위해  개인의 욕망과 필요를 당당하게 주장했으면 합니다.



* 쓰다보니 긴 글이 되었습니다. 두서가 없습니다.

좋은 공간에 보다 많은 이야기들이 쓰여지길 바랍니다.